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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여행지5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야고보서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이 구절은 신앙 생활하는 성도에게는 엄청나게 기죽이는 말씀이다.
도대체 말씀을 아는 만큼 합당하게 바른 생활을 하는 성도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면 ‘내가 구원 받은 사람이 맞는 것인가? 이렇게 신앙생활 하다가 나중에 구원에서 탈락되는 것은 않을까?’ 이런 염려까지 하게 만드는 무서운 말씀이다.

그리고 설교하는 목사나 부흥 강사들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면서 성도들을 윽박지르면서 구원까지 의심스럽다는 말로 겁을 주면서 억지 열심이라도 내도록 압박한다.

또 대다수 신학자들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야고보서 2장의 말씀은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다’는 로마서(롬1:17, 4:1-3) 말씀과는 정면 대치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 부류의 학자들은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상호 보완적이기에 병행해서 함께 읽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고, 다른 한 부류의 학자들은 야고보서의 수신자가 흩어져 있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 받은 성도에게 쓴 말씀이고 행함에 강조점을 두고 쓴 말씀이라 한다.
그렇다면 로마서가 로마교회의 성도에게 쓴 말씀인데 왜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다고 하였느냐고 질문을 하면 로마서는 복음을 기초부터 자세히 설명한 책이고 1장부터 11장까지는 교리 부분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또 대답을 할 것이다.
조그마한 지식으로 말장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구절의 정확한 문맥적인 뜻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밝혀 볼 것이다.

야고보는(약2:21-2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면서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실제 증거로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바치는 사건과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긴 사건을 제시한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의 그 행함은 어떤 행함일까?
기생 라합이 자기 나라를 배신하고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준 그 행함은 어떤 행함일까?

먼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구절을 성도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겠다.
대다수 성도들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니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하면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하면서 ‘교회 충성하기(예배 잘 드리고, 십일조 떼먹지 말고, 기도 생활 열심히, 모임 잘 참석하고, 봉사 잘하는 것)와 사회생활에서도 믿는 사람으로서 술 담배 먹지 말고, 거짓말 안하고, 바르게 사는 것 정도로만 적용을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이제는 모범적인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해야 된다 것으로 안다. 바른 생활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삶을 살라’는 말씀이 이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었으니 단순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착한 삶을 살라는 그런 말일까요?
물론 착하게 살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약2:21)는 구절에서의 ‘그 행함’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도덕적인 착한 삶을 살라는 그런 뜻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 보세요. 
자기 자식을 칼로 죽이고 불태워서 제사 드리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그 행함(행동)은 도덕적으로 우리가 본받을 만한 착하고 바른 행동일까요?

또 라합이 자기 나라를 침략하러 온 적군의 정탐꾼(스파이)을 숨기고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나라를 팔아먹고 망하게 하는 그녀의 그 행함(행동)이 착하고 옳은 행동일까요?

이러한 단순한 질문을 해 보더라도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구절의 그 행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히 성도로서 착하고 옳은 행동을 하고 교회를 열심히 섬겨야 한다는 그런 말을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그렇다면 ‘그 행함’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다.

첫째,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그 행함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생물학적 조건으로는 도저히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백세나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로 이삭이라는 아들을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이며, 인간의 힘으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 얻은 은혜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불태워 드리라고 명하셨다. 
언약의 후손으로 주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에 의하면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언약이 실패로 끝날 것이 뻔하다. 아브라함의 생각으로 보면 이삭을 죽여서는 안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을 누가 이어 갈 것인가? 
사실 이전의 아브라함 같으면 자신의 힘과 가능성, 지혜를 사용하여 언약의 후손 이삭을 죽이면 안 된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말과 행동을 하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힘을 보태서 언약의 후손을 생산할려고 과거에 노력했던 자이기도 하다. 언약 후손 낳기 위해 자기는 살아야 하기에 아내를 팔기도 했고, 또 경수가 끊긴 사라의 말을 들어 자기에게도 생산 능력이 곧 사라질 것 같아 하갈을 이라는 첩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힘이 보태져서 만들어낸 자녀를 부정해 버리신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가 인간적으로 더 이상 자녀를 출산할 수 없는 마른 막대기 같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언약의 후손 이삭을 선물로 주신 것이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노력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자기의 열심과 지혜가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언약의 후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토달지 않고 전적으로 순종을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는 비교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침 일찍이 번제할 나무를 지워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는 것이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도 감동할 만한 기특한 행동으로 보면 안 된다.
그와 반대로 아브라함 자신의 생각, 판단, 행동 그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것을 넘겨 드리는 아브라함의 자기부정 가운데 나온 행함인 것이다. 
사실 독자 이삭을 죽인다는 것은 아브라함 자기가 죽는 것 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차라리 아브라함 자기가 죽는 것이 그에게는 더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손에 칼과 불을 들고 가는 것은 아브라함 자기의 죽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행동은 자기의 죽음, 자기 부인의 행동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티끌 같은 죽은 흙에 불과한 존재임을 고백하며 하나님만이 옳으시고 의로우신 분이라는 고백 가운데 나온 행함이다.
지금 모리아 산의 아브라함의 행함은 자기 자신의 판단과 지혜와 노력을 다 부정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포기 가운데 나온 행함이다. 
자기부인 가운데 나온 행함이다.
바로 그러한 자기를 온전히 부정하는, 자기 부인 가운데 나온 행함은 아브라함 자신의 행함이 아닌 하나님의 행함, 즉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가운데 나오게 되는 하나님의 행함의 결과인 것이다.
칼을 이삭의 가슴에 내리 칠려고 할 때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칼을 멈추게 하신 후 어린양을 대신 잡아 제물로 바치게 하고 이삭과 아브라함은 살아 난다.

성도에 있어서 구원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는 사실을 양을 대신 잡아 제물로 드리고 죽어야 할 죽은 흙과 같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아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바로 선악과 따먹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자기만을 위해 사는 모든 인류를 대표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은혜로 나만을 위해, 나의 힘으로 노력으로 살고, 하나님까지 종교생활을 통해서 나에 유익을 위해 이용하던 지옥 백성인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은혜로 구언 받았음을 알고,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도 나만을 위해 사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십자가의 필연성과 은혜를 고백하는 가운데 나오는 신앙생활을 바로 자기부인 가운데 나온 행함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행함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행하신 행함 가운데 나타나는 결과이니 자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행동을 실제 예로 들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한 말의 참 뜻은 선악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된, 즉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사는 그 옛 자아에 대한 온전한 자기 부정, 즉 자기 부인 가운데 나오지 않는 자기의 열심과 노력으로 나온 그 행함은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죽은 믿음의 행함을 보였던 자들로서 자기 유익과 자기 자랑 가운데 종교생활을 했던 자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이 엄청난 경건한 행함을 보였을 지라도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 죽은 믿음, 죽은 행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 영광 자기 자랑이 된 것이다.

둘째는 기생 라합이 자기 나라를 파는 그 행함을 살펴보자.

기생 라합은 당시에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창녀였다. 라합은 자기가 속한 가나안이라는 나라에 있는 한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의해 죽게 될 것을 광야에서 행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믿었다. 광야 40년 동안에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듣게 하였고, 그것을 믿게 하신 분은 누구였겠는가? 믿음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데 말이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라합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하면서 자기가 속한 나라를 부정하고 배반한다. 
그것은 그동안 자신이 속해 있던 이전 세상에 대해 자신의 죽음을 뜻한다. 
자기가 속한 가나안 나라에 대해서는 나라를 팔아 먹은 자로서 그 나라에서는 죽음이다.
그래서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준 그 일은 바로 자기 죽음, 자기 부정 가운데 나온 행함이다.
자기가 속한 세상, 이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죽음을 감수한 가운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넘겨 버리고 맡겨버린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멸시 받고 그 저주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백성 참 이스라엘을 연합시켜서 다시 살려 내는 것처럼,
창녀요 멸시 받은 기생 라합 안에 이스라엘을 연합 시켜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내는 방편으로 사용 하신 것이다.
만일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그 전쟁에 일시적으로 실패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생 라합 안에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방법으로 구원해 내실 구원의 그림자를 보이고 게신 것이다.
그래서 기생 라합의 행함도 가나안이라는 세상나라에서의 자기 죽음을 선포한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한 자기 부정의 행함이요.
다른 표현으로서 자기 중심적인 세상 나라 안의 자기 중심적인 생활한 죄인 라합의 자기부인 가운데 나온 행함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이 기생 라합의 행함도 자기 자랑이 아닌 역사와 인생 가운데서 행하신 하나님의 열심 가운데 나온 자기부인의 행함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한 아브라함의 행함이나, 라합의 행함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라는 인간의 선악 판단의 기준에 의한 행함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고, 그 구원 받은 죄인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자기가 신이된 그 자기중심적인 옛 자아를 부인하고 부정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 가운데 나온 행함을 말하는 것이다. 
쉬운 표현으로 오늘 우리 입장에서 설명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선악과 따 먹고 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나 중심적인 죄인으로서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티끌 같은 존재임을 알고,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어서 구언 얻고 영생을 누리는 사람을 사는 자가 은혜로 되었음에 감사하며 십자가의 은혜만을 붙들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말과 야고보서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말은 같은 말씀이 되는 것이다.

성도는 구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요, 신앙생활도 십자가의 은혜에 의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십자가의 은혜로만 되어지는 것이다.
할레루야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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